빗속의 설렘이 운명이 되기까지
열두 살의 우산 아래서 시작된 첫사랑 이야기


본문
교육학과 건물 앞, 봄비가 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강의실을 향해 걸어가던 내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십 년도 더 된 기억 속의 그 얼굴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그 순간과 똑같았다.
"혹시... 민지야?"
"어... 준호 맞아?"
우리의 재회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열두 살의 봄날도 이렇게 비가 내렸다.
교실 창밖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하교 시간을 기다리던 그때,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나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민지는 늘 앞자리에 앉아 바른 자세로 수업을 듣던 반장이었다.
"준호야, 우산 안 가져왔어?"
"응..."
"그럼 같이 가자. 나랑."
하교길, 좁은 우산 속에서 그녀의 가슴이 내 오른팔에 살짝 닿았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녀의 은은한 샴푸 향기가 빗물 섞인 공기 속에 퍼졌다. 말 한마디 못하고 어색하게 걸었던 그 날의 설렘이, 지금도 생생하다.
민지는 늘 예뻤다. 까만 생머리에 맑은 눈동자, 웃을 때마다 보이는 보조개까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열두 살의 첫사랑. 하지만 그해 겨울, 민지네 가족이 이사를 간다는 소식에 나는 고백도 못한 채 그녀를 보내야 했다.
대학교 교육학과에서의 재회는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청순한 그녀의 모습에, 열두 살 때의 설렘이 그대로 되살아났다. 우리는 같은 과 학생이 되어 자주 마주치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수업이 끝난 후의 스터디 모임, 과제를 함께 하며 보낸 도서관에서의 시간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나누며, 우리는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갔다. 그녀는 여전히 그때처럼 성실했고, 이제는 더욱 성숙해진 모습으로 내 곁에 있었다.
"그때 네가 갑자기 이사 가서 너무 아쉬웠어."
"나도... 사실 너한테 말하지 못한 게 있었는데..."
"뭔데?"
"나도 그때 널 좋아했었어."
열두 살의 우리가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스물한 살의 봄날, 마침내 꽃처럼 피어났다.
대학 시절의 로맨스는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서로를 향한 첫사랑의 순수한 감정은 이제 더욱 깊어진 사랑이 되어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 우리의 사랑의 결실인 아기가 태어났다.
오늘도 비가 내린다. 열두 살의 그날처럼, 스물한 살의 그날처럼. 이제는 셋이서 같은 우산 아래 걸으며,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다. 아기의 옹알이 소리를 들으며, 그녀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고 미소 짓는다.
첫사랑이 마지막 사랑이 되어준 그녀에게, 나는 오늘도 감사하다. 우리의 인연이 시작된 그 빗내리는 봄날처럼, 앞으로도 계속될 우리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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